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캇 홀 (문단 편집) === WWF 시절 === 1984년 [[NWA(프로레슬링)|NWA]]라는 단체에서 레슬링 선수 생활을 시작한 홀은 이런 저런 단체에서 활약하면서 인맥과 인지도를 높여갔다. 그러다 그는 [[1992년]]에 [[WWE|WWF]]와 계약을 맺었는데, 계약 직후 그는 [[빈스 맥마흔]]에게 캐릭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고 한다. 바로 [[알 파치노]]의 영화 [[스카페이스(1983)|스카페이스]]를 기반으로 한 '''[[남미]] [[양아치]] [[악당]] 캐릭터.'''[* 그 때 당시 맥마흔은 스카페이스를 본 적이 없어서, 스캇 홀이 쿠바 억양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듣고 "이 자식 천재다!"라고 말했다고 한다. 정작 홀은 그 영화의 장면을 재연하는 것이었지만.] 이로 인해 탄생한 캐릭터가 '레이저 라몬.' [[파일:Hall_HBK_2.jpg]] [[릭 플레어]], [[브렛 하트]] 등과 대립을 하던 스캇 홀은 WWF [[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]]을 두고 [[숀 마이클스]]와 대립하게 된다. [[WWF 레슬매니아 10]]에서 있었던 홀과 숀의 [[WWE|WWF]] 사상 첫 [[래더매치]]는 별점 5점을 받았고, 아직까지도 WWF의 역사상 제일 위대한 매치 중 하나로 꼽힌다.[* 이 당시의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은 2인자로서의 권위가 살아있던 시기였다.] 그때 당시 홀은 마이클스와 같은 호텔 방을 사용할 정도로 친했다. [[파일:Curtain-Call.jpg]] 이 외에도 [[더스틴 로즈|골더스트]] 등과 대립을 하던 홀은 1996년 [[케빈 내시]]와 함께 WWF를 떠나게 되는데, 이때 일어난 사건이 소위 말하는 [[커튼 콜 사건]]. 이 사건 이후 [[숀 마이클스]]는 당시 [[메인 이벤터]]였고, 홀과 내쉬는 더이상 WWF 직원들이 아니었으니까 그 책임은 고스란히 [[트리플 H]]에게 씌워졌다.[* 그리고 그 뒤를 치고 올라간 것이 바로 지금의 [[스티브 오스틴|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]]이다.] 물론 트리플 H는 그 징계를 군소리 없이 받아들여 이후 빈스에게 인정받게 된다.[* [[WWF 레슬매니아 12]]에서 [[얼티밋 워리어]]에게 무참히 깨진 것도 징계라고 알려졌었지만 이는 징계가 아니라 워리어의 일방적인 고집으로 인한 [[스쿼시 매치]]였다. 트리플 H는 훗날 자랑스러운 경험이었다고 좋게 말하지만.][* 그리고 이 징계가 트리플 H의 대표적인 별명인 '더 게임'이 붙여지는데 밑거름이 된다.] WCW의 [[에릭 비숍]]은 WWE에서 가장 참신하면서 잘나가던 스캇 홀과 케빈 내쉬에 주목을 했고, 먼저 스캇 홀에게 접근하여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유혹을 했으며, 스캇 홀은 이 조건을 케빈 내쉬에게도 보여주며 두사람은 WCW 쪽으로 마음이 돌아서기 시작했고, 이 계약서를 빈스에게도 보여주며 같은 조건이라면 WWE에 남겠다고 하지만 빈스는 이에 응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WCW로 향하게 되었다.[* 월요일 밤의 전쟁 다큐에서 인터뷰했을 때, 당시 WCW에서 첫해 120일 출장에 120만 달러의 계약을 제시했다고 밝혔다. 참고로 빈스 밑에서 그 정도 돈을 벌려면 300일은 출장해야 했다고 한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